운동장에서 시와 놀기
생생한 삶의 언어들이 시로 태어났어요
 
정현숙
 중학교 3학년 국어 첫 단원의 제목은 '시의 표현'이다. 시에 쓰인 다양한 표현 방법-직유, 은유, 의인, 설의, 역설, 대구, 대조 등등-과 그런 표현이 시의 느낌과 의미를 전달해 주는 효과를 중심으로 학습하는 단원이다.

하지만 시를 쪼개 밑줄을 긋고, 이러저러한 표현 방법을 필기하면서 아이들에게 시는 외워야 할 시험의 대상이지 마음을 울리는 문학이 되지 못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라는 게 뭔가 어렵고 삶과 동떨어진 시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삶을 가장 솔직하고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내가 소녀 시절에, 그리고 연애를 하면서 그랬듯이 한 편의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먹먹한 느낌도 느껴보고, 어색하지만 맘에 드는 시를 골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예쁜 글씨로 옮겨 적어 편지와 함께 전하는 그런 설레는 기쁨을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다.

그래서 가능한 한 다양한 종류의 시들-‘나’, ‘가족’, ‘세상’, ‘사랑’이라는 주제로 묶어서 작은 자료집을 만들었다.-을 골라 나눠 주고 맘에 와 닿는 시와 구절을 골라 적어보게 한 다음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시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틈틈이 ‘문학 집배원 도종환의 시 배달’ 플래쉬 자료를 보여 주면서 영상과 음악이 있는 시 감상 시간도 가졌다.

교과서의 시들을 공부한 다음에는 수행평가로 시 쓰기를 하기로 했다. 교실 책상에 앉아 평가 점수를 얻기 위해 억지로 쓰는 시 말고, 밖으로 나가 맘껏 봄빛과 세상 풍경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시를 쓰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4월이 되자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갔다. 야외라고 해봤자 잔디가 있는 작은 뜰과 운동장이 전부이지만 아이들은 교정의 벤치와 잔디밭, 운동장 계단 어디든 맘껏 부려앉아 시로 쓰고 싶은 소재를 찾고, 그 소재로 표현하고 싶은 느낌과 단어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국어 시간에 운동장에 앉아, 잔디밭 거닐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이 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빛, 눈이 부셔서 차마 눈을 뜨고는 바라볼 수 없는 햇빛, 막 고개를 내밀고 피어난 키 낮은 제비꽃, 민들레 같은 들꽃과 냉이와 쑥, 담배나물, 클로버 같은 봄풀들, 사철나무의 연초록 잎, 막 꽃눈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벚나무,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 소프트볼 경기를 하는 아이들의 함성, 그리고 아직 차갑지만 춥지 않은 적당한 바람, 그 바람에 날리는 여자 아이들의 검은 머리카락~

이런 봄의 빛과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기쁜 하루였다.

3월 한 달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오랜만에 하루 종일 햇빛을 받으며 비타민d를 온몸으로 흡수한 탓인지 지난 3월의 어두운 기억들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의 우울함도 모두 날아가고, 모처럼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이 공책에 찾아 적어 온 시의 소재는 정말 다양했다.

더럽고 지저분해도 무엇이든 닦는 걸레, 새로 돋은 나뭇잎, 학교와 아파트 사이의 담벼락, 상가 주택들 사이로 보이는 안테나, 사물함에서 썩고 있는 우유, 소프트 볼, 치면 날아야 하는 공, 언제나 열려 있는 골대, 생명이 없는 아파트와 대조적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산,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공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운동장, 지금은 일본에 가 계신 아버지, 우연히 발에 차여 들어본 찌그러진 병뚜껑, 옆머리를 아예 밀어버린 동네 미용실, 일찍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초등학생, 먼지 쌓인 식수대, 나뭇가지에 집을 지은 거미,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나타난 과학 선생님 ……

이렇게 삶 속에서 찾아온 소재로 쓴 아이들의 시는 정말 살아 있었다. 비록 거칠고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삶과 느낌을 거짓없이 생생하게 살려낸 시들이 많았다. 그래서 시를 읽는 내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많은 시들 중에 우리 반 아이가 쓴 시는 읽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다. 공부라는 걸 소재로 쓴 건데, 지금 우리 아이들이 공부로 인해 느끼는 스트레스와 심정이 잘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여기에 옮겨 본다. 

       거 식 증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편식하지 말아라 깨작이지 말아라.

수학 공식만으로도 배가 부르다고
투정하는 나에게
오늘도 어김없이
영어 단어 한 주걱이 억지로 쑤셔넣어진다.

오늘 저녁은
국어 1단원에
반찬으로는 과학 일의 원리를 먹고
곁들여 수학은 제곱근에
디저트로는 사회책을 먹어라.

그들 마음대로 꽉 짜놓은 식단에
숨이 막히고 목이 졸려도
영어 문법으로 가득 찬 나의 입속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냠냠 쩝쩝 꾸역꾸역
억지로 쑤셔넣어
터질 듯 배가 부른 내 모습에
그제서야 만족한 듯
흐뭇한 웃음을 띤 그들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너무 배가 불러서
저것들이 머리끝까지 차고도
자리가 없어서 매일 밤 토해내는 나를.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마치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는 것처럼 느껴져 이 시를 썼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지 못한 채 학원과 교실에 앉자 얽매이는 우리 모습.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시를 통해 나에게,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이의 시와 시 소개를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기뻤다. 아이는 시를 쓰는 동안, 그리고 시를 쓰고 나서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시를 통해 자신과 친구, 이 세상을 만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다는 걸…….또 마음 속에 쌓여 있는 어떤 감정들을 이렇게 시의 언어로 불러내어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주는 기쁨과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정현숙 기자는 호평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생활지도와 학급 운영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깊습니다.
 
기사입력: 2008/04/18 [21:03]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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