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도 이름없는 이름에게
 
오미영
 눈을 가만 감으면... 물소리부터 들려오는 개울 마을이 보인다.

큰길 양쪽으로 큰 개울과 작은 개울이 서로 달리기 하듯 흘러가던 마을,
그 작은 개울 옆에 어씨 아저씨네 고랫논이 있었다.

▲ 텃논     © 이시백
우리 집 장독 뒤, 개나리 울타리가 부잣집 어씨 아저씨네 좁은 논둑 길과 나란히 있어, 이맘때쯤 개울 옆 키 큰 미루나무 새잎이 갈색인지 연두인지 돋아날 무렵이면, 물이 채워진 호수 같은 논에서 개구리들이 자박자박 밤새 울어대곤 했었다.

봄바람에 물결이 일 때마다 논에 비친 미루나무가 흔들려 지워졌다 나타났다 하는 걸 보며, "두둥실 ~ 두리둥실 ~ 배 떠나간다 ~ 물 맑은 봄바다에 배 떠나간다~ " 흥얼거리곤 했었지... 계집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처녀로 자라날 때까지 그 봄의 논은 드넓은 호수였고 건너가고 싶은 강이었는지 모른다.

그 호수 곁의 논둑길을 따라 큰 길을 건너 큰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찔레꽃 덤불로 울타리를 친 농장할아버지네 산수유 밭과 하얀 배꽃 밭이었다. 비탈진 배 밭 주변에 흩어져 있던 동그란 무덤들, 하루 종일 햇볕이 잘 들던 그곳이 무서우면서도 좋았다.

학교 가는 길이 아니어서 찾아갈 일이 없었을 텐데 그 길이 지금도 눈앞에 있는 듯 보인다.

집도 없고 사람도 잘 다니지 않던 거기를 스케치북을 들고 때론 하모니카를 주머니에 넣고 혼자 돌아다녔던 것 같다. 유년시절 한 두 해? 하모니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고, 몰두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하모니카 소리는 내 마음 속에 있는 거문고 줄을 건드려 봄꽃과 향기로 뒤엉킨 그 어린 봄 언덕으로 한 순간에 나를 데려다 놓곤 한다.

내 유년의 오래 된 필름을 되돌려 볼 때면 롱테이크로 천천히 잡혀오는 배꽃마을.

그 필름에는 마을사람도 보이지 않고 한 아이가 갖고 있었을 외로움이나 불안 같은 것도 찍혀있지 않다. 

▲ 산촌     © 이시백
몇 걸음만 나와도 금방 바구니를 채웠던 논두렁 쑥밭, 돌나물 밭이랑, 그 나물들 사이에서 통통하고 탐스럽게 올라와 캐고 싶었지만 맛 없어 버렸던 무릅나물 새순. 어디에서 무슨 나물이 많이 나는지, 무슨 풀꽃은 어디 가면 피어 있는지 내 몸의 실핏줄처럼 마을 구석구석을 다 보여주는 내 오래된 필름...

 말랑말랑하고 촉촉했던 흙 길, 이슬에 늘 발이 젖던 좁다란 그 길에서 기억의 카메라는 한동안 머물러 있다.

감았던 눈을 뜨면~ 그 큰 개울... 보이지 않고
개울물소리 대신 자동차 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흘러간다.
논밭이 있던 자리는 다 메워져 주유소와 물류창고가 들어 차 있다.

그 많던 배꽃들은 산 비탈 자락으로 피해 조금 살아남았을 뿐. 
마을 집과 구별되지 않았던 조그만 교회당이 그 자리에 궁전처럼 지어져, 가난했지만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이 마을의 발전상을 증거하고 서 있다.

지루하고 불안했던 유년의 강, 그 개울을 내가 건너 온 것일까. 그 강 같았던 개울이 나를 건너가 버린 것일까.
갈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은 그리움의 집에 살고 있다.
그리움의 집이 헐려나간 자리에서 내가 부르는 이름은 무엇인가.
불러도 불러도 이름 없는 이름......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본지 편집인.
 
기사입력: 2008/04/21 [18:0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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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08/04/26 [12:25]
생명을 탄생시킨 것도 자연이고, 스스로 물러갈 곳도 자연이다.
고향의 냄새와 어머니의 냄새가 물질보다 값진것도 인간이기에 더 소종한것 같다. 푸른색의 봄과 같이 우리의 맘도 푸르고 늘 꿈에도 못잊을 그곳에서 맘껏 즐기는 시간들이길 ~~ 소망해 봅니다. (마음으로...)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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