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은 누구인가
낚시 이야기 1
 
이상기
 낚시꾼이 늘고 있다.  

 
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칸반 대나마 마련해 두고, 이따금 꺼내서 방안에서나마 휘둘러 보는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상당수가 될 것이다. 거기에다 
낚시하는 이의 등뒤에서 하염없이 그 찌를 공짜 구경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될까. 텔레비전에서 이따금 비춰주는 낚시 장면을 보곤 막 입으로 가져 가던 숟가락을 내려 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이들까지 합한다면, 아마 대한민국의 남자들 가운데 절반은 낚시꾼에 속할 것이다. 무엇이 사람들을....그 가운데서도 많은 사내들을 물가로 이끌어 내는 것일까. 

 생명의 근원이 물이고, 인간의 뇌파가 물가에 가면 가정 안정적으로 흐른다는 얘기는 말고라도, 사람의 몸 속엔 필연코 낚시꾼의 피가 깃들어 있는 지도 모른다. 
 인류사적으로도 원시의 수렵채취 생활의 시기가 없던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 속엔 무언가를 쫓고 잡는 일에 신바람을 내는 물질이 담겨 있는 지도 모른다. 

꾼이라는 사람들  

낚시터에 가 보라. 
대체로 두 사람의 부류가 있다.

오늘 처음 해 본다는 초보자와, 십여 년을 낚시로 밥을 비벼 먹었다는 이들로 나뉜다. 대체로 낚시터에 가면 후자가 많다. 
 무슨 놈의 낚시들은 기저귀 차고부터 나섰는지, 저마다 십 년, 이십 년....장구한 족보를 늘여 놓는데, 기이하게도 한 서너 해 했다는 어중간한 꾼은 하나도 없다. 전혀 모른다는 이 말고는 모두가 낚시에 이골이 난 꾼들이다.  

 그이들의 표정은 심히 초연하고, 의젓하며, 도사연하다. 
 낚시대 후리는 법부터, 떡밥 매다는 법, 찌 맞추는 법까지 저마다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데, 혹 누군가가 점잖게 일가견을 늘어 놓는데 이의를 제기했다간 낚시터는 이내 심야토론장으로 변하고 만다. 떡밥만 써야 하느니, 어분을 섞어야 하느니, 수초 대에 바짝 붙여야 하느니, 물이 빠질 때니 깊은 곳을 노려야 하느니...그 가운데서도 가히 찌 논쟁은 세기를 넘어가는 고전적인 논쟁거리다. 물과 수평을 맞추느니, 살짝 한 눈금 올려 놔야 하느니, 떡밥을 달고 재느니, 한 쪽만 다느니.....
 
왕년에 고래 잡던 이야기
 
자칭 수십 년을 물가에서 어정거린 이들 치고 남의 말 잘듣는 넓은 귀는 하나도 없다. 오로지 제 고집 하나로 밀어 부치는데, 그이들의 말치고 오늘 참 낚시 잘 되는 날 없다. 
 바람이 분다느니, 물이 차다느니, 깊다느니, 흐른다느니, 심지어는 달이 밝다느니, 바닥에 청태가 꼈다느니.....이런저런 이유로 그날의 빈작을 핑계되는데, 그럴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왕년의 조행담'들이다. 물반 고기반, 잉어 지느러미가 물위로 나오고, 너무 잡아 손바닥 껍질이 벗겨졋다느니, 잡다 잡다 그냥 대를 후렸더니 납에 맞아 월척 붕어가 뜨더라느니.......

행여 그 날 조황이 좋기라도 하면 이번엔 물이 차니, 깊니, 더럽다는 타박은 한 마디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풍부한 상식과 예민한 포인트 파악, 비장의 떡밥과 세련된 대 배열.  하다못해 바늘에 꿰는 떡밥의 크기나 모양. 찌의 종류부터 대를 챌 때의 타이밍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비법 덕이라고  일장 강의를 늘어놓곤 한다. 

 그러다가 입질이 끊기고 옆 자리의 초보자가 막 잡기 시작하면, 그리 초연할 수가 없다. 낚시는 찌 보는 맛이라느니, 그리 많이 잡으면 어부 소리 듣느나느니 해 가며, 남의 재미에 초를 치기 일쑤다. 

 대개 이런 이들의 허세는 과거 자신들이 휩쓸고 다녔던 조선 반도 내의 온갖 유명 저수지들과 하천들이 오르내린다. 그러면서 막상 그 자리에 와서 낚시를 즐기면서도 "이건 낚시도 아니지.", " 세수 대야에서 애들 장난하는 거야." 라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그때마다 왜 그런 명당들을 놔두고 이런 세수 대야에 와 있는지 입이 근지럽기만 하다.

 물은 모든 걸 씻고, 평평히 흐른다 

그리고 지난 것은 다 흘러 가고, 지금 눈앞의 풍경만이 놓여 있는 것이다. 물가에 앉을 때는 모두가 그 자리에 놓여 있는 풍경일 뿐이다. 사장을 모시고 온 운전기사가 한 옆에 눈치 보며 편 낚시대라 할지라도, 물가에선 다 같은 낚시꾼일뿐이다. 팔십 년을 했든, 어제 막 청계천에서 산 칸반  짜리 낚시대 하나 들고 온 초보자든지, 모두가 물가에 앉아 있는 지금의 풍경일 뿐이다.   

 모든 걸 흘려 보내고, 또한 받아 들이는 물가에서 무엇을 낚아야 할까. 
 보이지 않는 수심 아래로 거미줄 같은 낚시줄을 늘어 뜨리고, 거기 무엇이 달려 올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그 깊은 물속에 모습을 숨긴 채 찌를 흔드는 것들이 매번 붕어나, 피라미 등속임을 알면서도  수만 번 그 흔들림마다 가슴 울렁이는 기대감에 몸을 떠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담겨 잇는 불확실함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꿈과 현실 사이의 미세한 긴장감 때문은 아닐까. 

 이제 꾼들은 많지만, 정작 그 틈에서 멋진 이를 만나기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늘도 물가를 찾은 내가, 넌지시 늘어 뜨린 미끼에 진솔하고도 시원스레 입질하는 때깔 좋은 붕어가 적기 때문은 아닐까. 그저 촐랑거리며, 들까부는 피라미들만 바글거리는 물가에 앉아 있는 건 아닐까.
기사입력: 2008/05/30 [10:03]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