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에게 무릎 꿇다
 
이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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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야생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산자락에 붙은 내 집 주변에도 야생화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른 봄이면 발밑을 조심해야 합니다. 댓돌 밑이나 마당 가장이, 밭두렁에 가냘픈 목을 곧추세운 작은 꽃들을 무참히 밟아 버리기 쉽습니다. 어찌나 작은지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눈에 띠지도 않습니다.

 

작고 느린 삶

산길을 한가로이 거닐다 보면 길가장이에 핀 작은 꽃들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작은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앉아야 겨우 눈에 들어옵니다. 목구멍 안에 밥풀 같은 꽃술이 달린 며느리밥풀꽃이며, 어린 소녀의 뺨에 살짝 박힌 주근깨처럼 작은 점이 박힌 별꽃을 만나려면 아무리 권세가 높고, 힘이 강한 이라도 그 앞에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이 작은 꽃들을 만나려면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차를 타고 휙 지나가거나, 급한 마음으로 바삐 걷는 이들은 이 꽃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야생화를 만나려면 모든 걸 내려놓고 한가로이 걸어야 합니다. 적어도 이 작은 꽃들을 만나려는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한 호흡 크게 내쉬고,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또한 딴 짓을 하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찾아와도 꽃들은 만나 주지 않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입에는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눈으로 구경하던 동물원처럼 찾았다가는 이 꽃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요즘 들어 작고, 느린 삶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야생화에 대한 관심과 무관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주말마다 많은 이들이 야생화를 찾아 산과 들로 찾아 나섭니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오래도록 지켜봅니다.

무엇이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꽃들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름다움으로 따지자면 장미의 우아함을 따를 수 없고, 화려함으로는 모란을 이길 수 없습니다. 무엇이 이 눈에 띠지 않을 만큼 작은 꽃 앞에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무엇이 사람을 무릎 꿇게 하는가 

 그것은 사랑과 관심입니다.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그것은 자동차에 타고 지나가는 이와 같습니다. 이 작은 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우뚝 서서 딴 생각에 잠긴 사람과 같습니다. 사랑은 능히 힘 있는 자를 약한 이에게 무릎 꿇게 합니다.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힘 있는 이가 약한 이를 섬길 수 없습니다.

스스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는 이에게 야생화를 보러 가기를 권합니다.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무슨 말을 해도 국민을 섬길 수 없습니다. 저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켠 어린 소녀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면, 그는 국민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08/05/28 [14:24]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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