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진 머리 찾으러 나선 낚시터
김병기의 낚시일기 (1)
 
김병기
 

지난 금요일, 친구의 상가에 문상 갔다가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낚시회를 위해 노력하시는 지인을 만나 오랜 만에 낚시꾼끼리의 " 뻥 " 치는 즐거움을 맛 보았다. 우선 내 낚시 입문기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나는 조금 독특하게 낚시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그 사연을 소개한다.   

두 번 째 직장으로 용산에 본사를 둔 어떤 건설회사에서 설계실 과장을 할 때였다. 첫애가 돌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마 1983년쯤으로 생각된다.

당시 해외공사 수주를 위한 턴키입찰(설계해서 공사를 수주하는)이 많았는데, 우리 회사는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발주하는 턴키입찰에 참여하게 되었다. 설계담당이 된 나는 부서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 구석에 야전침대를 마련하고, 꼬박 30일을 밤샘 작업하여 제출기한을 맞출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꽤 큰 프로젝트였으며, 시간에 쫒기고, 회장님이 직접 챙기시고, 변변찮은 재주로 능력 밖의 일을 하다 보니,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전 만하던 구멍이 여러 개 생기더니 그놈들이 살살 커지면서 프로젝트 끝날 무렵에는 단 한 올의 머리도 없는, 완전 뒤집어놓은 밥그릇이 되었다. 빵모자를 구해 쓰고 일을 끝냈으며, 다행으로 프로젝트가 성공하여 회사는 꽤 큰 수주를 하게 되었다. 

며칠후 회장님이 직접 치하하시는 회식자리가 있었다.
기분 좋게 얼큰해지신 회장님께서, 말석에서 빵모자를 쓰고 있는 김과장을 보시고 전무님께 물으셨다.

"쟤는 술 먹는데 웬 모자를 썼나?"
"저 친구 요번 일 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서 머리가 다 빠졌습니다."
"어이. 김과장 모자 한 번 벗어봐"


내 머리를 본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으며, 회장님 말씀하시길,

"김전무, 저 친구 머리 날 때까지 휴가 좀 주도록 해!! 

그리하여 나는 "머리 날 때 까지"라는 전무후무한 "유급휴가"를 받게 되었다.
새파란 나이에 머리를 모두 잃은 나는, "신경성 원형 탈모증" 치료를 위해 온갖 비방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는데, 알만한 대학병원은 물론이요, 동네 피부과, 한의원부터, 충청남도 공주의 무슨 용하다는 의원까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했으나 머리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남영동에있는 “ u 피부과"가 끝내 준다는 누군가의 조언에, 믿거나 말거나 한번 가보기로 하였다. 특진 신청을 하고 한나절이나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지금생각하면 그 양반이 바로 "화타" 또는 "허준" 이라. 

"직업이 뭡니까?"
"건축 설계요"
"신경 많이 쓰는 군요, 낚시 해 봤어요?"
"????? 아뇨.."
"요즘 낚시 제철입니다. 산란기 입질 끝내줍니다"
"괜히 이 병원 저 병원 쫒아 다니지 말구, 낚시나 다니슈."
"낚시 시작하구 보름내 머리 안 나면 내 책임지리다!!"
"멍~~~~"
"그래두 뭐좀 약이래두 좀 주셔야..... "
"아, 이 양반, 약 살 돈으로 낚싯대 사라니까, 낚시가 약이예요, 약."


황당하게 병원을 나온 나는 "별 놈 다보겠네, 지가 낚시광인 모양이지"
그때까지 낚시는 할일 없는 노인네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집에 가는 길에 버스를 타고 청량리 역전에 내렸는데, 전에는 안보이던 웬 "낚시가게" 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래 속는 셈치고" 하는 마음으로, "청삼낚시"라는 이름이 맘에 들고, 돋보기 끼고 앉아있는 주인 할아버지가 그럴 듯 해 보이는 , 그 중 허름해 보이는 가게로 들어갔다.

내 얘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아예 피부과 의사보다 한 술 더 뜨신다. 낚시로 무슨 불치병을 고쳤다는 둥, 머리가 좋아진다는 둥, 부부 금슬이 어떻다는 둥......
뻥을 곁들인 할아버지의 장사 수완에 나는 사용법도 모르는 꽤 비싼 막대기(?)들을 여러 개 구입했다. 고기 몇 마리 잡는데 그렇게 많은 도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할아버지는 각종 연장의 사용법을 일일이 설명해주시고, 엉성한 약도들, 바늘 매는 법, 여러 종류의 물고기 그림, 미끼가 어쩌고 하는 내용이 있는 책까지 팔아 먹으신 후에 마지막으로, ‘진짜, 진짜 나한테만 가르쳐 주신다’며 당신만의 포인트를 알려 주었다.

"166번 버스를 타고 팔당 지나서 능내라는 곳에서 내려서, 길 건너지 말구 동네를 통과하면 방앗간이 나오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물가를 따라 칠백 미터 쯤 가면 미루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제일 왼쪽 나무 아래에서 건너편 묘지를 보고 두칸 반 대를 담그면 명당이다..."  

하시며 무슨 간첩 접선하듯 주위를 살펴가며 소군소군 일러 주셨다. 그리하여 거의 10 년간에 걸친, "미루나무와 묘지 사이 물속 명당"을 찾아 헤매는 나의 "주말마다 가정 버리기"가 시작되었다.

김병기 기자는 아름다운 집과 삶을 꿈 꾸는 건축사입니다.
 
기사입력: 2008/11/21 [15:5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